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중심에는 대만의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반도체 제조 기술을 보유한 이 회사는 애플, AMD, 엔비디아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의존하는 핵심 파운드리다. 그런데 이 TSMC가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술 패권 전쟁 한복판에서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데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정책적 접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의 안보, TSMC의 기술
트럼프는 재임 시절, 미국의 기술 패권이 중국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화웨이와 같은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기술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는 상황을 경계했으며, 그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었다. 당시 화웨이는 TSMC에 대규모 반도체 칩을 주문하고 있었고, 이는 미국의 기술(예: 설계 툴, 장비)을 기반으로 생산되는 것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 기술이 25% 이상 사용된 제품을 화웨이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했다. 결과적으로 TSMC는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해야 했다.
트럼프의 전략: 제조기지를 미국으로
트럼프의 또 다른 전략은 TSMC를 미국 땅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 전략을 추진하면서, 미국 내에 첨단 반도체 생산 기지를 유치하기 위한 압박과 인센티브를 동시에 사용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20년 5월, TSMC가 애리조나주에 최첨단 5나노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 현실화됐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반도체 자립을 위한 첫 단추로 여겨졌고, 트럼프는 이를 자신의 기술 안보 성과로 내세웠다.
공급망의 무기화
TSMC와 같은 초정밀 제조 기업은 단순한 민간 기업을 넘어, 국가 안보 전략의 일부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중국이 기술을 훔친다”고 주장하며 TSMC와 같은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흐름은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며, TSMC는 미국 외에도 일본, 독일 등지에 생산기지를 확대하고 있다.
대만과의 미묘한 정치적 균형
TSMC는 본질적으로 대만 기업이며, 대만의 경제뿐 아니라 국가 안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트럼프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대만과의 비공식적 협력을 강화했다. TSMC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의미를 넘어, 미-대만 동맹의 상징이 되었다. 동시에 이는 중국 입장에서는 안보적 위협으로 간주되며 미-중 긴장을 고조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미국 내 반응과 TSMC의 진입 장벽
TSMC의 미국 진출은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 내에서는 기술 인프라, 숙련된 인력 부족, 생산비용 문제 등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와 ‘미국 우선’ 정책이 기업의 자유로운 시장 활동에 제약을 준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TSMC는 미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 장벽들을 넘어서고 있으며, 애리조나 공장은 현재도 단계적으로 확장 중이다.
결론: 기술 패권 시대의 TSMC와 트럼프
결국 TSMC와 트럼프의 관계는 단순한 기업-정부 간 거래가 아니라, 기술 패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전략의 일부였다. 트럼프는 TSMC를 미국의 기술 안보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고, 이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 했다. TSMC 역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사의 글로벌 입지를 확대하고 있으며, 단순한 파운드리 그 이상으로 기능하고 있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난 이후에도 그가 남긴 반도체 중심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는 지금도 반도체를 둘러싼 전쟁 중이며, TSMC는 그 중심에서 미국과 중국, 그리고 글로벌 IT 산업의 균형을 조율하고 있다. 트럼프가 시작한 이 기술 전쟁의 결과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TSMC는 그 최전선에 서 있다.